"4강까지 왔다"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던 밤 — 여자배구 태국전

9월 22일, 동메달 결정전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네트 건너편에서 태국 선수들이 서로 끌어안고, 이쪽 코트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점수가 전광판에 올라갔는데도 고개를 드는 선수가 없어요. 세트 스코어는 0-3. 한국 여자배구가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4위로 마칩니다.

이 장면 하나를 오늘 끝까지 붙들고 가보겠습니다. 결과는 이미 나왔고, 여러분도 기사로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결과만 알면 그 코트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절대 안 보입니다. 저는 캐스터의 눈으로, 그 마지막 순간에서 시계를 앞뒤로 돌려보려 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길, 그리고 일본에 막힌 밤

먼저 이 팀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부터 짚어야 합니다. 조별 예선 D조에서 한국은 베트남을 4세트 끝에 꺾고 조 1위를 차지했습니다. 4세트까지 갔다는 건 쉽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래도 끝내 조 1위 자리를 지켰다는 건 팀이 고비를 넘길 줄 안다는 뜻입니다. 이 흐름이 8강까지 이어졌어요.

8강 상대는 카자흐스탄. 한국은 세트를 하나도 내주지 않고 3-0으로 이겼고, 이 승리로 여자배구는 8년 만에 아시안게임 4강에 올랐습니다. 8년이라는 숫자를 그냥 넘기지 마세요. 이 대회 선수단 대부분이 마지막 4강 때는 어린 선수였거나 아예 대표팀 밖에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4강 진출 자체가 이 팀에는 하나의 결과물이었고, 그래서 그날 밤의 침묵이 더 무겁습니다.

21일 준결승 상대는 일본이었습니다. 결과는 0-3 패배. 한국이 아시안게임 여자배구 결승에 서 본 것이 12년 전이니, 이번에 이기면 그 시간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 보도된 표현이 그대로 그 무게를 말해줍니다. 결승 진출이 12년 만에 다시 좌절됐다는 것.

여기서 캐스터로서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준결승에서 지면 선수들은 하루 만에 다시 코트에 서야 합니다. 동메달 결정전은 이겨도 금·은이 아니라 동입니다. 심리적으로는 가장 어려운 경기예요. 랠리 하나하나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어제 마지막 점수에 붙들려 있습니다. 서브 리시브가 반 박자 늦고, 공격수와 세터의 호흡이 살짝 어긋나는 건 기술 문제가 아니라 그 하룻밤의 무게에서 나옵니다.

태국전 마지막 랠리, 그리고 눈물이 말해준 것

다시 22일의 코트로 돌아옵니다. 태국은 조직적으로 밀어붙였고, 한국은 세트마다 따라붙으려 했지만 끝내 한 세트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0-3이라는 숫자는 냉정하지만, 그 안에서 랠리가 길어질수록 한국 선수들이 몸을 던지는 장면이 반복됐다는 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디그가 올라가고, 두 번째 볼이 다시 코트 끝으로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마다 팀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배구는 랠리의 감동으로 이기는 종목이 아닙니다. 상대가 서브 한 방으로 리시브 라인을 흔들면 그 랠리는 시작조차 못 하고 끝납니다. 태국이 한국을 이긴 자리는 화려한 스파이크가 아니라 그 서브와 블로킹 뒤의 커버, 그러니까 공 하나를 더 살려내는 작은 차이였습니다. 이 차이가 세 세트에 걸쳐 쌓여 0-3이 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눈물을 쏟았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이 눈물은 졌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닙니다. 2연속 아시안게임 노메달이라는 결과가 이 종목의 현재 위치를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한때 아시아 상위권을 놓고 다투던 한국 여자배구가, 이제는 일본과 태국 같은 팀을 상대로 세트를 따내는 것부터 과제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자분들이 배구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저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4강까지 온 것은 사실이고 노메달도 사실입니다. 둘 중 하나만 붙들면 이 팀을 오해합니다. 이 팀은 8년 만에 문턱까지 올라섰고, 그 문턱의 높이를 이번 대회에서 정확히 재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대회까지 이 높이를 줄이는 것이 과제입니다.


자주 묻는 것 세 가지

"이번 대회 한국 여자배구의 최종 순위는 어떻게 되나요?"
동메달 결정전에서 태국에 0-3으로 져 4위로 마쳤습니다. 2022 항저우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조별 예선에서는 잘했는데 왜 토너먼트에서 무너졌나요?"
조별 예선은 D조 1위로 통과했지만, 토너먼트에서 만난 일본과 태국은 서브와 조직력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았습니다. 단판 승부에서는 그 차이가 세트 하나 없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8년 만의 4강은 의미가 없었나요?"
의미가 큽니다. 다만 4강이 목표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대회가 알려줬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그 코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저는 그 장면의 정적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마지막 점수가 오르고, 태국 선수들은 얼싸안고, 한국 선수들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누군가 먼저 네트 쪽으로 걸어가 악수를 청했을 때, 관중석의 박수가 그제야 들렸습니다. 저는 그 박수를 이 팀이 8년 만에 4강까지 올라온 길에 대한 응답이라고 듣고 싶습니다. 메달은 없었지만, 이 장면은 다음 대회의 출발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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