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자배구 첫 금메달을 가른 마지막 랠리
3세트 25점, 코트 위 모든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2024년 8월 11일 밤 8시, 사우스 파리 아레나 1. 3세트 스코어는 24-17, 이탈리아의 매치포인트였다. 관중석 조명이 파란빛으로 가라앉은 코트 위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리시브 위치를 다시 잡았다. 벤치의 코칭스태프도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미국의 서브가 넘어오는 순간, 코트 전체가 숨을 참은 듯 멈췄다.
이 한 점을 넣으면 이탈리아 여자배구는 올림픽 출전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관중석 곳곳에서 이탈리아 국기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카메라는 벤치에 앉은 선수들의 표정을 번갈아 비췄다.
이탈리아 여자배구는 다른 국제대회에서는 꾸준히 성과를 냈지만, 유독 올림픽 무대에서는 8강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하는 일이 반복돼왔다. 세계선수권이나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들조차 올림픽에서는 유독 힘을 쓰지 못한다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올림픽 징크스'라는 표현이 현지 매체에서 계속 언급됐다.
결승 상대인 미국은 준결승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풀세트 접전을 치르고 올라온 상태였다. 체력적으로 소진된 채 하루 휴식 만에 결승에 나선 미국은 리시브와 공격에서 범실이 이어졌고, 이탈리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1세트(25-18)와 2세트(25-20)를 안정적으로 가져갔다. 두 세트 모두 큰 위기 없이 흘러갔다는 점에서 결승 초반부터 분위기는 이탈리아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3세트 초반부터 이탈리아는 서브 리시브 안정성을 앞세워 점수 차를 벌려나갔다. 미국은 한 번씩 추격의 실마리를 잡는 듯했지만, 그때마다 이탈리아 블로커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벽을 세우며 흐름을 다시 가져왔다. 세트 스코어가 20점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관중석에서도 승부의 추가 이미 확실히 기울었다는 걸 체감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매치포인트, 그 몇 초
미국의 서브가 짧게 날아들었다. 이탈리아 리베로가 무릎을 굽혀 정확히 세터 위치로 공을 올렸고, 세터는 망설임 없이 라이트 쪽 공격수에게 토스를 배급했다. 공격수의 스파이크가 미국 블로커 손끝을 살짝 스치며 코트 바닥에 꽂혔다. 심판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들까지 모두 일어나 코트 위로 뛰어들었다.
스코어보드에는 25-17이 떴다. 세트 스코어 3-0, 완봉승이었다. 코트 위에서 얼싸안은 선수들 사이로 몇몇은 주저앉아 얼굴을 감쌌고, 몇몇은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벤치의 코칭스태프도 예외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관중석에서는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세트 스코어 3대0, 코트 위에서 쏟아진 안도와 환호.
메달 시상대 위에서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코트를 한 바퀴 돌며 관중석에 인사를 건넸다. 시상식에서 금메달이 목에 걸리는 순간, 몇몇 선수는 다시 눈물을 훔쳤고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올림픽 무대에서 여자배구 종목 메달 자체가 처음이었던 만큼, 시상대 위 표정에는 안도와 벅참이 함께 담겨 있었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자국 응원단도 국가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징크스가 깨진 뒤 남은 것
이 승리로 이탈리아 여자배구는 올림픽 출전 역사상 첫 메달이자 첫 금메달을 동시에 손에 넣었다. 다른 대회에서는 강했지만 올림픽만 유독 넘지 못했던 벽이 파리에서 무너진 셈이다. 대회 내내 안정적인 리시브와 조직력을 앞세웠던 이탈리아는 결승에서도 큰 흔들림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은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준결승에서 소진한 체력을 하루 만에 회복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국제대회 일정이 촘촘한 올림픽 특성상 준결승 결과가 결승전 체력 안배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뚜렷하게 보여준 대회이기도 했다. 준결승에서 힘을 다 쓰고 올라온 팀이 결승에서 고전하는 흐름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이 우승은 이후 열린 국제대회 랭킹 산정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올림픽 금메달은 세계랭킹 포인트 배점에서 가장 높은 등급에 해당해, 이탈리아는 다음 시즌 국제대회 출전권 배정과 조편성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 한 번의 우승이 향후 몇 시즌 동안의 대회 일정과 시드 배정까지 함께 흔들어 놓은 셈이다.
스코어보드에 25-17이 뜨던 그 몇 초는 길게 봐야 채 10초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한 나라의 배구 역사가 새로 쓰였고, 오랫동안 따라다니던 올림픽 징크스라는 말도 그 순간부로 완전히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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