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수권 32개국 확대가 한국 남자배구를 11년 만에 불러냈다
세계선수권 참가국 24→32개국 확대와 LA28 올림픽 출전권 12장의 배분 구조
결론부터 간다. 국제배구연맹, 그러니까 FIVB가 세계선수권의 뼈대를 갈아엎었다. 4년에 한 번 열리던 대회를 2년에 한 번으로 바꿨고, 본선 참가국을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렸다. 2023년 6월 22일 집행위원회가 2025-2028 국제배구 캘린더를 승인하면서 확정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 새 구조가 처음 적용된 대회가 2025년 필리핀에서 열린 남자 세계선수권이었다.
여기서 한국 이야기가 시작된다. 새 구조의 첫 대회 코트에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섰다. 2014년 이후 11년 만의 본선이다. 그 사이 한국 남자배구는 세계선수권이라는 단어를 꺼내기도 민망한 자리에 있었다. 문이 넓어지자 그 문으로 들어간 팀 중에 한국이 있었다는 뜻이다. 반대로 같은 해 여자 대표팀은 11년 만에 본선 티켓을 놓쳤다. 같은 개편이 한쪽에는 문을 열어주고 다른 쪽에는 닫혔다는 사실을 알려준 셈이다.
정리 먼저: 이번 개편의 핵심
✔ 세계선수권 주기가 4년에서 2년으로 바뀌었고, 첫 적용 대회가 2025년이다
✔ 본선 참가국은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8개 조 4팀 조별리그 뒤 각 조 2위까지 16강에 오른다
✔ 월드컵, 올림픽 예선 토너먼트, 대륙 예선 토너먼트가 국제 일정표에서 사라졌다
✔ LA28 올림픽 출전권 12장은 개최국 1장, 대륙선수권 우승 5장, 2027 세계선수권 상위 3장, 세계랭킹 상위 3장으로 갈린다
배경 — 배구 국제 일정표는 왜 손댈 수밖에 없었나
예전 구조를 떠올려 보자. 세계선수권은 올림픽 사이사이 4년에 한 번, 24개국이 모이는 대회였다. 여기에 월드컵이 따로 있었고, 발리볼네이션스리그가 따로 돌아갔고, 올림픽에 가려면 올림픽 예선 토너먼트를 또 치러야 했다. 대륙별 예선 토너먼트까지 얹히면 대표팀은 1년 내내 종류가 다른 국제대회를 옮겨 다녔다. 선수는 소속 리그 시즌까지 함께 소화한다. 일정표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대회가 많다는 건 겉보기에 좋은 일 같지만, 대표팀을 운영하는 쪽에서는 반대다. 대륙 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에 가고, 본선 성적이 나빠도 올림픽 예선이 또 남아 있으니, 한 해에 진짜 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이 어디인지 정하기가 어려웠다. 전력을 아끼면 예선에서 미끄러지고, 다 쏟아부으면 정작 큰 대회에서 힘이 빠졌다. 이 딜레마가 오래 이어졌다.
문제는 그 많은 대회가 팬에게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월드컵에서 이긴 팀과 세계선수권에서 이긴 팀이 다르고, 올림픽 예선은 또 별개의 승부였다. 어느 대회가 진짜 세계 1위를 가리는 자리인지 배구를 오래 본 사람도 헷갈렸다. 중계 편성 입장에서도 매년 이름이 바뀌는 대회를 설명하는 일이 반복됐다. FIVB가 캘린더를 정리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온 답이 간단하고 과감했다. 대회 수를 줄이고, 남은 하나를 키우는 것. 세계선수권을 2년마다 열어 존재감을 높이고, 참가국을 32개국으로 늘려 판을 키운다. 조별리그는 4팀씩 8개 조로 짜고 각 조 1·2위가 16강에 올라간다. 대회는 17일 동안 64경기로 굴러간다. 남녀 대회가 같은 방식으로 치러진다는 점도 이번 개편에서 처음 못 박힌 내용이다.
여기에 발리볼네이션스리그가 매년 여름을 채우고 있다는 점도 계산에 들어갔다. 리그 형태로 돌아가는 대회가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 단판 승부의 무게는 세계선수권 한쪽으로 몰아주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대표팀 입장에서도 여름에는 리그로 감각을 유지하고, 2년에 한 번 오는 세계선수권에서 승부를 보는 그림이 훨씬 단순하다. 시즌 내내 다른 이름의 대회를 쫓아다니며 주전 선수의 몸을 갈아 넣던 구조에서는 부상 관리조차 계획을 세우기 어려웠다.
32개국이라는 숫자가 주는 효과는 명확하다. 24개국 시절에는 각 대륙의 강호가 자리를 거의 다 채웠다. 여덟 자리가 더 생기면 그 자리는 대부분 중위권과 신흥국의 몫이 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두 번째, 세 번째 팀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팀을 상대로 한 세트라도 붙어보는 경험을 쌓게 된다는 뜻이다. 배구를 넓히겠다는 국제연맹의 목적과 참가국 확대는 정확히 같은 방향을 본다.
무슨 일이 있었나 — 32개국 시대 첫 대회, 한국의 사흘
새 구조의 첫 무대는 2025년이었다. 남자 대회는 필리핀에서, 여자 대회는 태국에서 열렸다. 아시아에서 남녀 세계선수권이 나란히 치러진 것부터 이례적인 그림이다. 그리고 그 남자 대회 조 추첨에서 한국은 C조에 들어갔다. 프랑스, 아르헨티나, 핀란드. 조 편성표를 본 순간 기대보다 각오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구성이었다.
첫 경기 프랑스전은 0-3이었다. 세트를 하나도 가져오지 못했다. 두 번째 아르헨티나전에서 흐름이 조금 달라졌다. 1-3. 한 세트를 따냈다. 마지막 핀란드전도 1-3. 또 한 세트를 가져왔다. 세 경기 전패지만 스코어를 뜯어보면 결이 다르다. 첫 경기의 0과 이후 두 경기의 1은, 코트 위에서 상대 서브를 받아내는 감각이 사흘 사이에 달라졌다는 기록이다.
상대 면면을 보면 이 두 세트의 값이 더 또렷해진다. 프랑스는 2020 도쿄와 2024 파리, 두 번의 올림픽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목에 건 팀이다. 아르헨티나도 올림픽 시상대를 밟아본 전력이 있는 남미의 강호다. 조별리그에서 두 팀만 16강에 오르는 구조에서 한국이 잡아야 할 자리는 처음부터 매우 좁았다. 그 좁은 문 앞에서 세트를 따내는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 이번 대회 한국이 챙긴 실질적인 수확이다.
대회가 끝나고 한국 남자 대표팀에 매겨진 최종 순위는 27위였다. 32개국 중 27위. 승리는 없었지만 뒤에 다섯 팀이 있었다. 같은 대회에서 일본은 23위, 중국은 30위였다. 아시아 세 팀이 23위, 27위, 30위로 흩어졌다는 사실은 아시아 남자배구가 세계 무대에서 어디쯤 서 있는지를 숫자 하나로 보여준다. 11년 만의 본선에서 한국이 받아 든 성적표는 냉정했지만, 성적표를 받아 볼 기회 자체가 11년 만이었다.
같은 시기 여자 대회가 태국에서 열렸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남녀 세계선수권이 나란히 동남아시아에서 치러지면서, 아시아 팬들은 시차 부담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 개최지를 배구 전통 강국 바깥으로 넓히는 흐름과 참가국 확대가 같은 시기에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같은 해 여자 쪽은 반대였다. 한국 여자 대표팀은 11년 만에 세계선수권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참가국이 32개국으로 늘어난 대회에서 탈락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문이 넓어졌는데 못 들어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남자부의 복귀와 여자부의 이탈이 같은 해에 겹치면서, 한국 배구는 개편의 수혜와 경고를 동시에 받아 들었다.
무엇이 달라지나 — 출전권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이번 개편에서 팬이 가장 늦게 체감하는 변화는 사라진 대회 쪽이다. 월드컵이 없어졌다. 올림픽 예선 토너먼트도, 대륙 예선 토너먼트도 국제 일정표에서 빠졌다. 예전에는 올림픽에 못 나갈 것 같으면 예선 토너먼트라는 마지막 관문이 따로 있었다. 그 관문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건, 평소 성적이 곧 출전권이 되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LA28 올림픽 배구 출전권 12장이 어떻게 갈리느냐가 중요해졌다. 개최국 미국이 1장을 자동으로 가져간다. 각 대륙선수권 우승팀 5개국이 5장을 가져간다. 2027년 세계선수권에서 아직 출전권이 없는 팀 중 상위 3팀이 3장을 받는다. 남은 3장은 세계랭킹 상위 팀 가운데 아직 티켓을 못 잡은 순서로 채워진다. 남녀 모두 같은 방식이다.
- 본선 참가국 24개국 → 32개국, 주기 4년 → 2년
- 조별리그 4팀씩 8개 조, 각 조 2위까지 16강 진출
- 대회 기간 17일, 총 64경기
- LA28 출전권 12장 = 개최국 1 + 대륙선수권 우승 5 + 2027 세계선수권 3 + 세계랭킹 3
한국 입장에서 계산해 보면 답이 뚜렷하게 나온다. 세계랭킹 상위 3장은 현실적으로 유럽과 남미 강호의 몫이다. 세계선수권 상위 3팀 자리도 쉽지 않다. 결국 가장 짧은 길은 대륙선수권 우승 한 장이다. 아시아선수권 정상에 서면 다른 경우의 수를 볼 필요 없이 올림픽 코트에 선다. 대표팀이 아시아 대회 하나하나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규정 안에 박혀 있는 셈이다.
이 변화는 국내 팬이 경기를 보는 방식도 바꿔 놓는다. 예전에는 평범해 보이던 대륙 단위 경기 하나가 이제 올림픽 티켓 계산에 직접 얹힌다. 아시아선수권 8강 한 경기,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한 세트가 랭킹 포인트로 환산돼 몇 년 뒤 출전권 순번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중계에서 세계랭킹 숫자를 자막으로 띄우는 장면이 늘어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대표팀 운영 쪽으로 보면 부담은 더 커졌다. 예선 토너먼트가 있던 시절에는 큰 대회에서 부진해도 만회할 무대가 한 번 더 남아 있었다. 이제는 그 완충 장치가 없다. 대륙선수권 한 대회에 최상의 엔트리를 꾸리지 못하면 다음 기회를 2년 뒤로 미뤄야 한다. 소속 리그 일정과 대표팀 차출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성적만큼 중요한 변수가 된 셈이다.
앞으로 일정도 이미 정해져 있다. 2027년 남자 세계선수권은 폴란드에서 다섯 개 도시를 돌며 열린다. 같은 해 여자 대회는 미국과 캐나다가 함께 치르고 결승 무대는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이다. 두 나라가 세계선수권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29년 남자 대회는 카타르 도하로 간다. 중동에서 배구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첫 사례다. 개최지 지도가 유럽 바깥으로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이번 개편이 낳은 변화다.
자주 묻는 질문
Q. 세계선수권이 2년마다 열리면 가치가 떨어지지 않나요?
대회 수 자체는 오히려 줄었다. 월드컵과 예선 토너먼트가 사라진 자리를 세계선수권 하나가 흡수한 구조다. 대표팀이 치르는 큰 대회의 종류가 단순해졌으니, 이름값은 분산되지 않고 한곳으로 모인다.
Q. 32개국으로 늘면 수준 차이가 나는 경기가 많아지지 않나요?
조별리그 초반에는 그런 경기가 나올 수 있다. 다만 4팀씩 8개 조라 각 조에서 두 팀만 살아남는다. 16강부터는 살아남은 팀끼리 붙기 때문에 토너먼트 구간의 밀도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Q. 올림픽에 가려면 결국 무엇을 해야 하나요?
예선 토너먼트가 없어졌으니 평소 대회 성적이 전부다. 대륙선수권 우승이 가장 확실한 길이고, 그게 아니면 세계선수권 성적과 세계랭킹 포인트를 꾸준히 쌓아야 한다.
마무리
배구 국제 무대의 규칙이 바뀌면 코트 위 풍경도 따라 바뀐다. 32개국 시대의 첫 대회에서 한국 남자배구는 27위를 받았고, 여자배구는 아예 자리를 얻지 못했다. 숫자만 보면 반가운 성적표는 아니다. 하지만 문이 넓어진 구조 자체는 앞으로도 유지된다. 2년마다 32개국이 모이고, 그 성적이 그대로 올림픽 출전권 계산에 들어간다.
다음으로 지켜볼 지점은 명확하다. 대륙선수권 우승 한 장이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그리고 한국이 그 한 장을 향해 어떤 엔트리를 짜는지다. 이제 예선 토너먼트라는 보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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